저는 진료실 밖에서 먼저 환자였습니다
1. 스물두 살, 차에 치였습니다
대학생 때 차에 치였습니다.
왼쪽 다리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여러 군데 끊어져서 대학병원에 두 달 가까이 누워 있었습니다.
피부이식까지 하느라 수술도 두 번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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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작 힘든 건 퇴원한 뒤였습니다
발바닥이 늘 저렸고 살갗은 남의 살처럼 무뎠습니다.
무릎이 아팠다가 허리가 아팠다가, 통증이 전신을 돌아다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습니다.
이런저런 치료를 받아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고, 더 해 줄 게 없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런 사고를 당했다는 것도, 통증과 후유증 때문에 매일이 괴로운 것도 너무 답답하고 절망스러웠습니다.
매일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을까’, ‘사고 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3. 제 몸은 제가 고쳐 보자
결국 제 몸은 제가 고쳐 보자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에서 읽은 것은 손으로 익혔고, 익힌 것은 제 몸에 먼저 해 봤습니다.
그러다 알게 됐습니다.
아픈 곳과 그 아픔을 만드는 원인 자리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원인 자리를 충분한 강도로 제대로 치료해야 비로소 풀린다는 것입니다.
4. 남 얘기로 들리지 않는 말
진료실에서 이런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몇 년 동안 이런저런 치료를 다 받아 봤는데 낫질 않아요.”
“이제는 무슨 치료를 더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남 얘기로 들리지 않습니다.
저도 그 시간을 꽤 오래 지나왔습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제가 바랐던 건 괜찮아질 거라는 위로보다 이 통증을 줄여 줄 전문가였습니다.
그래서 한 분께 시간을 오래 씁니다.
어디가 아프신지,
어떤 자세와 동작에서 더 아프신지,
지금까지 어떤 치료를 받으셨고 그때 몸이 어땠는지는 서둘러서는 알 수가 없거든요.
제가 한 분께 쓰는 시간을 듣고 한의대 동기들이 놀라기도 합니다.
5. 개원하면서 정한 원칙
한 분께 시간이 걸릴지라도 충분한 강도로 치료하자는 것입니다.
개원 첫날부터 저는 충분히 치료했다고 생각될 때 치료실을 나옵니다.
강도는 환자분이 견디실 수 있는 만큼만 올립니다.
솔직히 경영만 생각하면
좋은 방식이 못 됩니다.
하루에 뵐 수 있는 분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개원을 준비하면서 한의원을 잘 꾸려 가시는 선배 원장님들께 여쭤봤더니 답이 비슷했습니다.
한 분 한 분 잘 치료해 드리면 다른 아픈 곳도 맡기시고 가족이며 친구분을 모시고 오신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가는 길이 맞다고 믿게 됐습니다.
6. 종착역이 되는 한의원
몇 년째 낫지 않고 오히려 심해져서 안 가 본 병원이 없고 안 해 본 치료가 없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께 종착역이 되는 한의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다만 종착역이었는지는 제가 정할 수 없습니다.
오래 아프셨던 분이 하던 일을 다시 하시게 됐을 때 그분이 정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처음 정한 진료 순서를 오래 지키려고 합니다.
진료할 때 아래 세 가지도 꼭 지킵니다.
- 오늘 무엇을 확인했고 무엇을 근거로 판단했는지 설명합니다.
- 확인되지 않은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 여기서 볼 수 있는 것과, 다른 진료나 검사가 먼저인 것을 구분해 말합니다.
의심 반 기대 반이어도 괜찮습니다.
그 의심을 풀어 드리는 건 제 몫입니다.